어떤 날은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질 것 같다가도, 문득 떠올리면 또렷한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그 하루가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것처럼.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특별한 일 없이 해가 떴고, 평소처럼 커피를 내리고, 익숙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공기는 유독 부드럽고 따뜻했다. 햇살이 창문 너머로 내려앉는 각도마저도 완벽했다. 나는 괜스레 창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깊고도 맑았고, 거리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물결처럼 번졌다.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 쌓여서 하루를 감싸는 무언가가 되었다.
하루를 온전히 느끼는 일이 언제부터 어려워졌을까. 분주한 일정과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나는 늘 다음 순간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바람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갈 때, 나는 그것을 온전히 느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 그것이 얼마나 따뜻한지 새삼 깨달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어쩌면 그날은 특별한 게 아니라, 내가 특별하게 바라본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을 지나도 어떤 날은 스쳐 가고, 어떤 날은 마음 깊이 남는다. 나는 그날을 품고 살아간다. 언젠가 다시 떠올릴 수 있도록, 그 따스했던 하루를 내 안에 고이 간직한 채.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붙잡아 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전엔 순간을 채워 넣기 바빴다면, 이제는 순간을 음미하고 싶어졌다. 마치 입안에서 천천히 녹여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사탕처럼.
그래서 나만의 작은 의식을 만들었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하나를 떠올리는 것. 커피 한 잔의 온기, 친구와 나눈 짧은 대화, 길가에 피어 있던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때로는 의미 없는 듯한 장면이 가장 오랫동안 남았다.
어떤 날은 바람이 유난히 상쾌해서 기억에 남고, 또 어떤 날은 낯선 이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물들였다. 가끔은 쓸쓸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품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소중한 하루는 거창한 이벤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것은 오히려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발견된다. 천천히 걸을 때 보이는 것들, 조용히 앉아 있을 때 들리는 소리들, 아무 말 없이도 전해지는 마음들. 그런 것들이 모여 하루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루를 품고 살아간다. 언젠가 누군가가 “네가 기억하는 가장 소중한 날은 언제야?”라고 물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바로 오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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